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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침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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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패가 갈리다: 프랑스 2군의 스당 역습 실패 ==== 여태 시종일관 얻어터지던 프랑스군도 슬슬 A집단군이 단순히 벨기에 남부와 룩셈부르크를 노리는 조공이 아닌 주공이었다는 것, 스당 방어선이 위험에 빠졌다는 전황을 파악하고 역습을 시작했다. 독일군이 형성한 돌파구는 아직 좁았고, 1기갑사단이 도하하며 설치한 골리에의 교량을 제외하면 중장비/중화기가 수송될 만한 통로가 없었다. 따라서 이 교량에 연합군은 공군력을 집중시켰고, 제2군에서 2개 전차대대를 증원받은 '''10군단'''은 증강된 2개 보병연대로 반격을 지시했다. 더불어 2군 사령관 [[샤를 욍치제]] 장군은 제2군 지역으로 배속된 '''21군단'''에 야전군 예비대 일부를 충원해 야전군 차원의 대대적인 역습을 준비했다. 이것이 제대로 이루어지기만 했다면 지금까지 독일군이 이뤄낸 성과는 무로 돌아갔을 것이다. 제대로 들어가기만 했다면 말이다. 우선 교량을 파괴하기 위한 연합군 공군이 개박살난다. 골리에 교량이 목표가 될 것을 예측한 독일군은 다리 인근에 조밀한 방공망을 구축했고, 가용한 공군력까지 총집결시켰다. 반면 연합군은 전력 집중은커녕 그나마도 축차 투입으로 참혹한 피해를 입는다.[* 이 시점에서 독일의 폴란드 침공에서의 전훈이 상당히 도움이 되었다. 독일은 폴란드 침공기간 동안 공세지점에 공군력을 집중 배치시키는 전략을 펼쳤고 나름 1차 대전 에이스 출신이었던 괴링의 노력과 앞선 참전 경험으로 독일 전투기 조종사들의 수준은 수적 우세를 살리기에 충분했다. 또한 20mm 대공포를 기반으로 한 방공부대들 역시 앞선 침공의 경험 덕에 상당히 괜찮은 탄막을 형성하며 연합군 공군의 작전수행을 효과적으로 방해했다.] 이 동안 구데리안은 19기갑군단의 주력을 마스 강 너머로 도하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 시점에서 10군단의 역습이라도 실행되었다면 어떻게든 도하를 저지할 수 있었겠지만... 역습의 지휘를 맡은 55보병사단장 라퐁텐 장군은 '문서화된 명령의 서식'을 수령하기 전까지는 따를 수 없다며 공식 명령을 받기 위해 사단 지휘소를 떠나버린다. 결국 명령을 수령한지 9시간이 지난 5월 13일 오후 8시 후에 라퐁텐은 역습을 지시했고, 실제로 시작된 것은 11시간 반이 지난 이후였다. 애초에 군단장 그랑샤르 장군이 최초로 명령을 발한 것은 16시였으나 라퐁텐은 4시간이 지나서야 수령하였다. 게다가 역습부대의 우익이 탈영 사태로 지체된 탓에 실질적인 병력은 본래 계획의 절반에 불과했다. 당시 55사단이 공황에 빠져 있긴 했지만 방어 거점의 상당수가 건재했고, 예비대가 아직 남아 있었다는 점, 그리고 역습 명령 하달 이후 프랑스군의 사기가 왕성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때의 역습이 즉각적으로 이뤄지지 못한 것이 프랑스 입장에서는 천추의 한이라 하겠다.[* 더 희극이 된 것은 역습 부대의 우익은 대규모 탈영병의 물결에 휘말려서 지체되는 중이었는데 상급 부대 명령을 수령하기 위해 사단 지휘소로 이동하던 연대장 모네 중령이 탈영 혐의로 체포되었다는 것. 근데 모네 중령은 [[레지옹 도뇌르 훈장]] 수훈 경험이 있는 전쟁 영웅 출신이었다. 심지어 모네 중령은 이걸 빌미로 중령 계급을 박탈당하고 레지옹 도뇌르 훈장 수훈자 명단에서 제명되기까지 했다.] 한편 플라비니 장군이 지휘하는 21군단은 이번 야전군 차원의 반격 작전의 핵심이 되어 2개 군단급의 부대를 동원할 권한을 부여받았다. 21군단은 직할로만 3흉갑기병사단과 5경기병사단, 3차량화보병사단에 1기병여단 등을 보유했고, 여기에 2군 예하의 예비대와 10군단의 잔여 병력 등을 배속받았으나, 문제는 이들 역시 턱없이 느리게 움직였다는 것이다. 5월 14일 6시에 르 쉔느에 대기하고 있던 3흉갑기병사단은 13시가 돼서야 기동을 시작했고, 플라비니 장군이 진두지휘하는 역습부대는 무려 17시 30분이 되어서야 공격 준비를 완료했다. 이 시기의 구데리안은 측방 위협을 아예 무시하고[* 무시했다는 표현은 곡해가 있는 것이 결과적으로 구데리안은 후술할 요충지 스톤(Stonne)의 선점으로 공세적인 측면 방어를 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만슈타인이 작전 초안에서 대략적으로 제시한 개념을 구데리안이 현실로 옮긴 셈. 다만 그가 자신의 회고록에도 적었다시피 그는 기갑군이 타 병과에 비해 공세중 측면으로부터의 위협에 보다 안전하다고 믿었던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 그의 신속한 진격과 관련하여 상층부와 갈등을 빚은 부분이 주로 이것이었는데, 구데리안이 측면에 대한 방비를 하는 것보다 빠른 기동과 연속적인 전투를 통한 돌파를 중시한 것과 달리 상층부는 보병부대로 하여금 기갑군의 측면을 보호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돌격을 주도하고 있었기에 사실상 프랑스군이 승리를 거둘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회였다. 하지만 프랑스군이 밍기적거리는 사이 구데리안은 프랑스군이 역습을 한다면 핵심적인 교두보가 될 수 있는 스톤(Stonne)에 10기갑사단으로 하여금 공세적 방어를 지시한다. 그로스도이칠란트 연대를 배속받은 10기갑사단은 5월 15일 새벽에 스톤 고지 일대를 점거한다. 선형 방어 사상의 영향이 강하게 남아 있는 프랑스군은 스당 역습은 까맣게 잃어버리고 스톤 고지 탈환에 매몰되어 그 일대에서 고착된다. 그 사이 구데리안이 지휘하는 19기갑군단의 주력사단인 1,2기갑사단은 빠르게 서쪽으로 질주하였다. 같은 시각 41기갑군단의 6기갑사단 역시 프랑스군 방어선을 뚫고 양 측면의 19기갑군단과 15기갑군단을 추월하며 거대한 돌파구를 형성하였다. 그리고 여기서 프랑스군의 더 큰 실책이 터지고 말았으니... 겁에 질려 후퇴한 병력들과 역습에 실패한 10군단 예비대를 확인한 플라비니 장군이 역습 자체를 취소해 버린 것이다. 그리고 기갑부대를 해체해 분산 방어로 투입해버린다. 북동부전선을 총괄하는 조르주 장군은 2군 사령관 [[샤를 욍치제]] 장군에게 분노를 터뜨리며 [[스당]] 일대에의 반격을 재촉했다. 하지만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병력을 재배치시키는 것은 불가능하였고, 5월 15일 14시에 예정되었던 스당 역습은 18시 30분까지 늦춰지다 결국 취소되어 스당이 아닌 스톤 고지에 대한 반격으로 변경된다. 더 웃기는 것은 취소 명령을 제때 하달받지 못한 2개 전차중대가 국지적인 역습에 나섰다가 독일군을 유린할 '''뻔''' 했다는 것.[* [[샤르 B1 bis]] 전차는 독일군의 37mm [[PaK 36]] [[대전차포]]로는 거의 난공불락에 가까운 대상이었다.] 이 2개 중대는 자기들만 역습 중인 것을 알고 급히 후퇴했다. 결국 독일군을 스당 일대에서 저지할 수 있었던 유일한 기회는 이런 식으로 허무하게 사라졌다.[* 2개 전차 중대의 공격으로 방어를 맡고 있던 그로스도이칠란트 대전차중대는 궤멸된 상황이었기에 그냥 밀고 들어가면 독일군은 끝장이었다.] 프랑스 2군 예하 10군단, 21군단의 스당 방면 역습이 모두 무위로 돌아가자 프랑스는 9군과 신편된 6군으로 하여금 서쪽으로 뻗어나가는 19기갑군단의 진격을 차단하려 했지만, 채 방어선을 구축하기도 전에 19기갑군단은 가공할 속도로 기동하여15일 6군과 9군 사이의 간격을 공격, 돌파하였고 5월 16일 아르덴 운하의 서쪽 구릉지대까지 돌파하는 데까지 성공한다. 5월 17일 스톤 고지 전투가 최종적으로 독일의 승리로 끝난 시점 비스듬히 진격하던 19기갑집단은 서북쪽으로 반전하여 6기갑사단이 뚫어놓은 돌파구로 향한다. 뒤늦게 프랑스와 영국군은 독일군의 실제 주공이 바로 아르덴 산맥을 넘어온 A집단군이었으며 베네룩스 방면으로 강력한 공격을 가해온 B 집단군이 사실 조공이었음을 깨달았지만 여기서 또 다시 A집단군이 파리로 향할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파리 방면으로 병력을 배치했다. 하지만 A집단군의 목표는 파리가 아니라 대서양이었다. 18일 오후 독일군 1,2,6 기갑사단이 공격을 개시하였고 19일 이들 앞을 막던 프랑스군 방어선은 와해되었다. 이제 때는 늦었고 A집단군의 대서양을 향한 진력로를 막을 연합군은 없었다. 드디어 낫질이 대서양을 향해 뻗어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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